보통 폰트 라이선스가 폰트 자체에 박혀있는 경우가 있다.


일러스트에서 저장하면 폰트는 같이 저장 안 된다고 하는 경우들 있다.


ttfpatch 라는 이 툴을 사용하면 ttf 파일에 박혀있는 라이선스를 변경시킬 수 있다.


http://www.derwok.de/downloads/ttfpatch/


없던 라이선스를 붙일 수도 있으니,


폰트 제작자,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폰트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사용 가능하다.


옵션은 아래와 같다.


0: embedding for permanent installation
1: reserved - do not use!
2: embedding restricted (not allowed!)
4: embedding for preview & printing allowed
8: embedding for editing allowed


AND

이건 뭐 case by case 이긴 한데...


export 옵션에서 progressive / upper first / lower first 를 잘 선택해야한다.


progressive 가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고 계속 밀어붙였는데, 확인해보니 lower first 가 가장 고화질이었다.



--->


다시 살펴보니, 맨 첨에 sequence 만들 때 progressive / upper first / lower first 를 셋팅한다. 이 셋팅과 같도록 해서 export 해줘야 깨끗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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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ackoverflow.com/questions/8554043/what-is-clearfix


그동안 계속 <div class="clearfix"></div> 같은 군더더기를 모든 셀에 반복시켜서 썼는데,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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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카테고리 없음 2013. 11. 6. 00:03

남들에게는 대단치 않은 것이 내게는 무척 특별하고 의미있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 낡은 수건이라던가,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다이어리 뭐 그런 것들. 결국 그런 물건들이 지니는 가치는, 그 물건을 통해서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wednesday가 나에게는 그렇다.

 

1995년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가요계에 등장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DJ doc의 곡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wednesday라는 남성 5인조 그룹이 그 주인이었다. 종종 그시절에는 라디오에서도 틀어주곤 했고, 실제로 공중파 가요프로그램에도 등장해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우연찮게 나는 라디오에서 맨 처음 이 곡을 접했고, 가사랑 분위기가 신기해서 사서 듣겠단 결심을 했다. 그 당시 노래 테잎 하나 사려면, 우리 동네가 아닌 큰집 근처의 레코드샵까지 가야했는데, 일년에 몇번 명절에나 가는 거라, 추석이 돼서 겨우 샀던 기억이 난다.

오버도 아니고, 언더도 아닌 이 애매한 느낌의 남성 5인조가 하필 왜 나를 지목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중학교 저년차의 그 고상한 감성을 이들의 곡으로 충만하게 채워나갔다. 덕분에 그 당시 나의 개그코드는 '머피의 법칙' 과 '연애편지 쓰는 새벽' '추억의 노래방' 정도가 그 기초를 담당했고, 나의 늦은밤 감성코드는 '내 친구는 어디에', '우리', '캔디와 테리처럼' 같은 곡들이 절절하게 달래주곤 했다. 중2병의 초입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당시 내가 듣던 음악들은 굉장히 메이저한 가요들이었는데, 신승훈, 김건모, 이승환 같은 부류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서 있었던 wednesday. 당시 우리집에 노래 테입 다 합쳐봐야 열댓개 될까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마이너도 이런 마이너가 없었다. 왜 하필 그대들이었나. 이런 운명같으니라고.

 

별이 빛나는 밤에를 이문세가 하던 시절. 하이텔로 접속해서 사연 남기면 열에 한 두번은 사연이 읽히기도 했고, 밤마다 라디오나 테입 틀어놓고 자다가 안 끄고 잠들어서 새벽 내내 켜놓기도 했었고. 저런 노래 가사에 심취해서 되도 않은 편지들도 끄적 끄적 써내려갔던 게 그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묻어 있는게 이들의 노래다. 나에게는 응답하라 1995, 1996, 1997 등등이 여기에 있는 셈.

 

하지만 이사하고, 학교가고, 졸업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wednesday 테입은 고사하고, 신승훈, 김건모 cd도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들의 노래가 등록되어 있길래,  언제고 들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2013년. 문득 스쳐지나간 이들의 노래가 생각나서 이곳 저곳 뒤져보는데, 아뿔싸. 스트리밍이고 mp3고 모두 내려가버렸다. 유투브에 겨우 한 곡 남아있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가요프로에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비디오. 주옥같은 나머지 곡들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세상에, 여기 그 노래 아는 사람 있단 말이에요!!! 그 노래를 들려주세요!!!!

 

결국 구글링을 하고 한 끝에, 겨우 겨우 중고CD장터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들의 CD(심지어 미개봉)를 구할 수 있었다.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는다고, 음원 제공되던 시절에 미리미리 받아놨더라면 좋았을 것을, 거금을 주고 CD로 구입한다고 이래저래 큰 마음 먹게 만들었다.

 

오늘에서야 도착한 택배를 풀러서, CD플레이어에 있던 아이의 동요CD를 치우고 걸어보았다. 한번 정주행을 마치고 나서는, 다시 컴퓨터에 걸어 mp3를 최고음질로 립핑하고, 거기다가 꼼꼼하게 mp3 tag 까지 입혔다. 앨범 커버도 있어야 하니까 앨범자켓을 손수 찍어서 포토샵으로 손질까지해 , mp3파일에 추가했다. 이왕 하는거 가사까지 찾아서 다 넣어줬다. 혹시 어디 날아갈까 싶어서 클라우드에 꼭꼭 박아놓기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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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세상에 이들의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나 말고 대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그야말로 세상 모두가 기억해주지 않는 그무엇을, 나는 소중히 여기고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이들의 명곡을(나에게만 명곡?), 그리고 그 명곡을 통해 추억하는 나의 어릴적 시간들을 15년이 지난 오늘, 다시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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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에 지도 붙여놓은 걸 여럿 봤지만, 이게 제일 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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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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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디자인의 한계

mobile 2013. 9. 26. 10:55

현재의 앱디자인은 과거 웹디자인을 테이블로 짜던 시절과 거의 비슷하다. 모든 이미지의 shadow 를 포토샵에서 잘라내서 나인패치 형태의 테이블에 한 귀퉁이씩 짜넣던 그 시절. 이 답답함때문에 모바일웹 디자인이 차라리 편한 것 같다. 적어도 레이아웃에서 shadow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언제쯤이면 앱디자인에서도 CSS가 구현하는 수준의 언어기반 렌더링이 가능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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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기준

생각 2013. 9. 25. 12:47

추석 사흘동안 처가에서 음식 먹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먹는 양도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저 생활수준의 차이일까?


내가 어릴 적엔 우리집 식탁에 생선이 두 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오는 일은 잘 없었다. 갈치는 한 마리가 여러토막으로 나오니 두 마리 효과를 누리는 건 있어도, 조기나 고등어 같은 생선이 두 마리씩 올라오진 않았다. 반면, 처가 식탁에는 늘 생선은 두 마리 정도가 올라온다. 

또 우리집에선 찌개나 탕이 있으면 그걸로 한끼 식사에 충분한 메인음식이었다. 하지만, 처가에서는 찌개나 탕이 있어도 불고기나 갈비가 나오기도 하고, 혹은 또 뭔가 있기도 하고 그렇다.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게 많다.


결혼 초에는 이게 잘 납득이 안 가서 낭비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도 두 사람이 주로 먹는 식탁에선 이 정도의 음식은 곧잘 남아서 낭비다. 하지만 아내가 지내온 문화권에서는 그렇게 식탁을 준비하고 음식을 소비했으니 그걸 탓하기가 어렵다. 기본적으로 식구 수가 우리집보다 많았고, 또 어느정도 여유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내가 크면서 음식을 많이 못 먹은 걸까? 그런 생각도 든다. 형편이 안 돼서 그렇게 푸짐한 상을 자주 못 먹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느집 식탁을 스탠다드라고 들이댈 수 있겠냐만, 만약 처가기준으로 본다면 우리집 식탁은 다소 빈약한 데가 있었을게다. 난 그런 식탁으로 십수년을 커왔고.


처가에서 사흘을 먹고는 늘 배가 더부룩하고 과식한 느낌이었다. 몸에 안 익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푸짐한 상차림에 내가 눈이 멀어 과식을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저런 생각에 배는 불러도 마음은 어느 한구석 쓸쓸한 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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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우리집에 오기로 한 분은, 결국 중학생 딸의 만류를 이기지 못하고 첫출근을 접어야 했다. 그 전에 일하시던 분도, 가족에게 숨기고 제법 오래 일을 하셨지만, 결국 아들이 만류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셨다. 대체 ‘남의 집 일을 한다는 것’ 이 무어길래. 이토록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꺼리고, 더러는 자기 스스로도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불편해 할까.

하인, 식모, 파출부, 가사도우미 등등으로 이름의 명칭이 바뀌었을 뿐, 그 일의 성격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마도 큰 원인이지 싶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성격이 바뀌어서 이름도 바뀐 것이라 믿는 나는 사회적 통념을 너무 무시하는 건가. 우리집에서 청소나 아이돌보는 일을 도와주시던 이모님께 난 단 한번도 어떤 일을 마구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고, 계약된 일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은 해서도 안 되고, 혹여나 해야한다면 양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대개는 우리보다 나이가 더 있으신 분들이 일하시기 때문에라도, 항상 일해주심에 감사드리고, 인사도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 여전히 은연중에 주종관계에 대한 인식이 이런 일을 불편하게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본인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자녀들이 그러할 수도 있고. 허나 이건 본인 스스로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문제다.

또 하나는, 이 일에 아무런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이다. 집안일 거들어 주는게 뭐 대단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이 그저 단순 노동력을 빌려주는 정도라고 믿는 거 같다. 허나, 설거지 하나를 하는데 있어서도 
- 물과 시간을 얼마나 절약해서 설거지를 마칠 것인지
- 어떤 순서로 설거지를 해야 효율이 높은지
- 물기가 잘 빠지게 하려면 어떻게 그릇을 쌓아올려야 하는지
- 수세미의 종류는 어떤 것들을 골라서 사용해야 하는지
등등 나름의 노하우가 다양하다. 특히 음식관련 일들은 전문성이 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이런 일을 하시는 분들도 쉽게 생각 안 한다. 일 못하는 사람이나 그냥 노동력으로 하는 거다. 요즘은 이런 서비스를 아예 대기업에서 브랜드를 걸고 하는 경우도 있고, 자체적인 교육시스템도 있다. 전문성이 없는 게 전혀 아니다.

아내 혼자서 네 살짜리 한 살짜리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결코 녹록하지 않다. 건장한 나도 왠종일 시달린다 생각하면 한숨이 푹푹 나올 일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야 비용 지불을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편견을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 그게 일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입장이다. 결코 사치를 누리기 위함이 아닌, 생존을 위한 선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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