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디자이너의 역할' 이라고 이름 붙이려다가 생각해보니, 너무 포괄적인가 싶어서 컨셉디자이너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엄밀히 말하면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노무 컨셉이라는 단어도 워낙에가 뜻하는 바 넓다보니, 누군가 또 검색해 들어와서 잔뜩 오해나 하지 않을런지 모르겠네.

요즘 드는 생각은 우리직군(컨셉디자인, 기획, UX 등)이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말 가치있는 일인가? 라는 것.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다소 궁색한) 우리 역할의 근거란 '엔지니어들은 기술만 알고 쓸 줄을 모르니까요',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디자이너 아니겠십니까?' 라는 자신감넘치는 포부였는데, 어째 필드에 나와보니 진짜 엔지니어들은 사용자들도 잘 이해하고 있고, 우리가 입으로 몇달 떠들 사이에 실물이 나와서 이미 굴러가고 있더라.

그 레벨이 안 되는 엔지니어나, 혹은 또 다른 부서의 기획자들은 '너희 디자이너 나부랭이들이 기술이나 시장현황을 제.대.로 알어? 이게 되는 소리야?' 라며, 살가운 대접을 해주고.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ideal 한 경험이에요" 라고 목소리를 먼저 내보고, 잘 안 먹히면 "요정도는 feasible 한 경험이에요" 라고 한발 물러서기 일쑤. 

이게... 회사라는 조직구조의 문제일까?
아님 엔지니어가 너무 사용자 친화적이 되어버린 건가? (아, 여기서 말하는 엔지니어는 회사내부도 있지만, 현세에 같이 숨쉬고 있는 많은 개발자들을 포함한다. 그들은 지금도 모처에서 스마트폰 어플 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고, 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갈수록, 컨셉을 만들고 비전을 제시하는 디자이너의 설 땅이 좁아지는 것도 같고.
그 이면에는 '공부 안 하는 디자이너' 들이 있지 않나 (나 포함) 생각도 해본다.

제너럴 리스트가 되라고 부르짖었건만. 이도저도 어줍잖게 하는 어설픈 디자이너가 되었거나, 어디가서 자리 깔아도 먹고 살 수 있을만한 미래적 통찰도 없이 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것일수도.

원튼, 원치 않든, (하다보니) 3~4년을 현업에서 이짓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끊임없이 되묻지 않고서는 이 일을 온전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 답을 못 찾았고, 찾고 있는 중. 아마도 이런 류의 글을 계속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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