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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31 버스에 앉아서

버스에 앉아서

생각 2011. 10. 31. 23:04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린이 또래정도의 어린 남자아이를 포대기에 둘러업은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요즘의 멋쟁이 엄마들과는 달리, 정말 우리 시대에나 볼법한 포대기로 아이를 들쳐업은 할머니는 뒷문 바로 앞자리에 아이를 업은채로 앉아계셨다. 비교적 빠글빠글한 파마머리에 붉은색 비닐잠바, 그리고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파란색 포대기에 생뚱맞은 핸드백이, 보는 나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면서 그냥 살짝 울적한 마음도 든다.

아마도 이 늦은 시각에 시내버스 한켠에 할머니와 함께 오른 그 아이는, 어린이집 한구석에서 어디론가 일을 나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할머니 등에 업혀 돌아오는 길일지도 모른다. 멋쟁이 엄마들이 쓰는 '애기띠'는 오십견으로 고생하는 할머니가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을테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짠했던 것은 아마도 그 아이의 몸놀림 때문이었던 거 같은데, 두어살 짜리라고 보기 힘들만큼 할머니 등에 업혀서, 아니 꽂꽂히 붙어서 어리광하나 없이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마도 그 아이에게 이런 것이 얼마나 익숙한 것이었는가를 되돌아보게 되고, 여태 버스한번 지하철 한번 제대로 탄 적이 없는 우리 집 아이를 떠올려보며 이 풍경이 주는 생경함과 측은함이라는 것이 내게 묘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자동차가 생긴 것은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물론이지만, 그 후로도. 엄마와 어딘가를 나갈 때에는 자가용을 타고 이동하기보다는 시내버스 한 켠에 앉아 30분이고 40분이고 그렇게 이동했었다. 물론, 엄마가 운전을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가 중학교때 5천원정도 거리를 택시탔다고 아버지에게 무척 혼이 난 걸 보면, 그 때 그 시절에 우리가족은 버스 정도의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할머니와 손자의 풍경을 보면서 내가 다시금 놀라는 것은.
내 어릴 적의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그런 모습을 '측은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냐면, 그걸 측은하게 느낀다는 것은 나와 그들을 철저하게 타자화 하고 있다는 뜻이고, 은연중에 나와 다른 사람들. 나와 다른 계급이라고 내 머릿속에서 금을 긋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이 충분히 타기 편해서, 그리고 엄마와 아이들이 안전하게 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만 있다면야, 내가 이런 복잡한 생각도 안 하겠지. 비가 와도 하나 젖지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카시트에 폭신하게 앉아서 이리저리 오다니는 우리집 아이를 떠올려보면서, 나는 천상 미안하다는 생각만 가지고 버스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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