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 라고 쓰고 '조리있는 말하기' 쯤으로 읽는다 - 가 안 되는 사람을 만날 때 제일 짜증이 난다.

본인 스스로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고 내뱉는 형용사와 조사들. 맞춤법 틀리는 건 아예 논외로 치고. 

그런 수식어들의 홍수 속에서 본인은 굉장히 멋진 말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고, 그걸 계속 듣고 넘겨야 하는 사람은 이걸 계속 받아쳐야 하는지, 아니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하고 쓰느냐고 반문해야 하는지 듣는 내내 괴롭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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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배우고 있다.

배우기 시작한 건 올 초였는데, 한달 강습을 받고는 창업한다고 바빠서 손 놓고 있다가, 지난 달에 다시 레슨을 시작했다. 서너달을 놨더니 거의 처음부터 다시 하는 기분이었고, 공도 거의 맞질 않았다. 초반 한 달에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웠다.


이번 한달은 아침 시간에 주로 강습을 받았다. 저녁때보다 출석하기도 쉬운 편이었고, 의지를 다지기에도 좋았다. 물론 후반으로 가서는 꾀가 나기도 하고 몸도 피곤해서 한 두번 포기하긴 했다. 그래도, 연습을 하고 새로 배우는 것들을 적용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개선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가 이루는 이 작은 성취에 감사했다. 


연습하고 노력해서 작은 성취를 이루는 이 경험. 이것이 우리 삶에서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하고 있는 이 긴긴 작업들과 노력들에 대해 내 스스로 불신하고 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운동은 훌륭한 촉진제이며 스승이 된다. 나는 그것을 배웠다. 


또 하나의 유익은 '믿음'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운동을 배우다 보면 내 상식과 맞지 않는 것들을 몸에 익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일전에 스노우 보드를 타면서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앞발에 무게를 싣는 것 따위다. 앞발에 무게를 실어야 뒷발로 방향 전환이 가능하고, 그래야 결국에는 속도도 조절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는 앞으로 무게를 실으면 가속이 될게 뻔하고, 속도가 붙는 건 초보자로서는 두려운 일이다. 그러니 이 상식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나는 타는 내내 '앞발에 무게, 앞발에 무게' 라고 입으로 되뇌이면서 내 스스로를 통제했다. 이 믿음이 체화되면, 그제서야 나는 자유를 얻게 되는데, 운동은 이 작은 믿음이 내게 주는 변화를 체험케 하는데 아주 좋은 툴이다.

(골프도 클럽으로 공을 떠올리듯 치는 게 아니고, 거의 땅을 찍듯이 쳐야 하는데 여기에도 '믿음'이 필요하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8)


뱀발. 힐링캠프에서 차인표씨가 아주 중요한 얘기를 했는데 팔굽혀 펴기 1000개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늘려나가면 된다. 나는 그 방송을 보고나서 지금 83개의 팔굽혀 펴기를 하고 있다. 그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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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조달했다. 

이것도 10년 전 얘기고, 그나마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 학교라 가능했지, 일반 대학 같았으면 나는 몇 번 휴학을 하고 일을 해가면서 학교를 다녔을 지도 모른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그 벌이로 기성회비나 기숙사비 내고, 일이 괜찮을 때는 용돈도 부족하지 않게 쓰곤 했다. 과외는 거의 안 했으니, 고학생 치고는 그렇게 힘들 것도 없었다.


2학년이었는지 3학년이었는지 대략 여름이었는데. 어느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용돈 하라며 50만원을 보여주시겠다는 거였다. 돈 생긴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냐마는. 내가 그 당시 딱히 돈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었고, 아버지 어머니 어렵게 지내시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으니, 오히려 그 돈이 나보다는 부모님께 더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전 괜찮아요. 아버지 쓰세요."


딴에는 생각한다고 드린 말이었는데, 되려 그 말 때매 아버지께 많이 혼났다. 부모가 주는 건 그냥 감사하게 받는 거지, 자식이 뭘 받니 안 받니 하는 거 아니라고. 매점 앞에서 휴대폰을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부모가 줄 수 있을 때, 또 그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는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설령 내가 환갑이되고 아버지가 팔순이 넘어도, 아버지가 주시는 돈 만원을 내가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내게도 아버지에게도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왜 나는 그때 깨닫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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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질타

생각 2012. 7. 17. 10:31

요즘 아침에 골프연습장에 나가서 레슨을 받고 있다.


오늘은 코치가 내 그립이 좋지 않다며 이래저래 싫은 소리를 하길래 기분이 좀 별로였다. 

사람이 간사해서, 조금만 잘한다 잘한다 하면 기운이 나서 붕붕 날다가도, '이게 좀 별로다. 이런 건 고쳐라' 하면 겉으로는 '네, 네' 하지만 속으로는 마뜩치 않아하는 것. 게다가 '이 코치가 지금 날 제대로 잘 가르치고 있는가?' 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무슨 지적을 해도 고깝게 들릴 수 있다보니. 나는 이 부분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회사에서 내가 아랫사람이다보니 이런 칭찬과 질타를 듣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스타트업에 있으니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할 사람이 없다. 오히려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때로 칭찬인지 질타인지를 돌아보게 되고, 또 내가 얼마나 누적해서 칭찬과 질타를 주었는가를 곰곰히 따져보곤 한다. 


아무리 상황이 맞고, 내가 옳아도. 여태 칭찬 한번 못 듣고 싫은 소리만 들어온 사람에게 또 한번의 질책은 별로 의미도 없고 감정만 상한다. 이럴 때,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잘 살펴서 말을 아끼는 지혜도 필요하다.


뱀발1) 골프코치가 좀 시원찮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라고 말하거나 (그럼 니가 설명을 못하는데 무슨 코치니), '아, 답답하네. 회원님! 이게 안돼요 이게?' (야, 내가 배우러 온 사람이니까 당연히 안 되지. 그게 됐음 내가 여기서 배우냐? 가르치지) 라고 말할 때.


밸발2) 이제,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사용자. 'UI 가 구리다' 라던지 '디자인이 맘에 안 든다' 라는 식의 피드백이 들어오면 그날 하루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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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는 것

생각 2012. 6. 13. 10:10

기존의 것을 바꾸는 것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
기존의 것이 내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닐 경우 이는 몇 배 더 힘든데, 내가 만들지 않은 그 하나 하나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쓰던 것을 바꾸는 것에 대한 저항감 같은 것이야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다만 내 선택이 합리적인 기준에서 옳은가 틀린가를 끊임없이 반추해야 하는 과정은 소프트웨어라는 특성상 무언가를 다했다고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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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년사는 그 시점에 적절한 트렌드를 잘 짚어서 현 조직의 업무와 잘 엮어내는 내용이 공표되곤 한다. 시무식에서 리더가 나와 "올 해, 우리 조직은 이런 것들에 중점을 둡니다~ 1. 2. 3." 이라고 말하는 것들 말이다. 신입때야 이런 내용들이 다 리더가 혼자 열심히 고민해서 나오는 줄로 알았지만, 한 반년정도 스탭(staff)조직에 있어보니 이런 신년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대강 배우게 됐다.


물론, 리더는 큰 맥락을 잡고,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부적인 디테일은 그 아래의 스탭 조직이 '만들어' 주는 것이지, 리더 혼자서 세세하게 그 모든 것을 기획하지는 않는다. 그럴 시간도 잘 없거니와, 왠만큼 조직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리더가 아니라면, 차라리 실무를 이해하는 스탭 조직이 그 디테일을 잡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문제는 그 디테일을 만드는 스탭인데, 리더가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fail.

리더와 스탭의 역할이 다르다는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리더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스탭 조직이 할 일이다. 만약 당신의 리더가 어디가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조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을 하게 되면, 한 절반은 스탭인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여기서 절반은 그런 내조를 받고도 그 내조가 충분한 것인지, 제대로 된 것인지를 분별해내지 못하는 리더에게 있다.)


한 번은 UX 가 화두가 된 적이 있어서, 신년사에 들어갈 내용으로 UX에 대한 장황한 썰을 푸는데에 참여한 적이 있다. 문제는 스탭 조직이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화두가 되는 내용을 100% 잘 안다고 할 수가 없는 것. 당연히 리더도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니, 밑에서 충분히 support 를 해줘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결국 스탭 3인이 모여 이러쿵 저러쿵 그럴싸하게 요리를 해서 장황한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이리저리 재어보고 첨삭도 하던 리더는 별로 못 마땅해 하더니, 정작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는 아주 확신에 찬 얼굴로 UX 에 대해서 우리가(스탭이) 만든 내용을 마치 자신이 생각한 결과물인 것처럼 전달했다. 이게 문제다.


여기서 내가 충격을 받았던 두 가지는 서포트를 한답시고 만들었던 UX에 대한 자료가 내 기준에서는 여전히 형편없었다는 것이고, 리더는 그것이 자기 성에 차지 않아도, 결국에는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오랜 시간 고민한 것처럼 공표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쩔 수가 없다. 리더는 조직이 클 수록, 그에 비례하는 비전과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줘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고, 설령 그게 틀리던 맞던 간에 그 자체를 하지 못하면 바로 리더십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쯤되니 나중에 내가 저런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못 무섭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잘못하다가는 나는 내 입으로 맘에 들지도 않는 소리를 내뱉어야 할테니까.


이런 원리를 역으로 풀어나가면, 어떤 조직의 수장이 내뱉는 신년사, 조직원들에게 보내는 글 따위로 조직의 디테일한 면면을 보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 결국 그런 내용들은 스탭 조직에서 현안이 될만한 이슈들을 정리하고 엑기스를 뽑아낸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다소 뻔한 소리같아서 저런 말 누가 못하나 싶어도, 그 행간을 짚어보면 나름 의미 있는 현안을 볼 수 있단 얘기다. 실제로 내가 만난 어떤 부장님은 회장님 신년사를 꼼꼼하게 줄쳐가면서 그 안에 숨겨진(?) 다른 조직들의 문제점이나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데 활용하기도 했다. 


결론.

1. 리더는 되는 것도 문제지만, 같이 움직이는 팀을 꾸리는 것도 중요하다. 조직이 커질 수록 더욱.

2. 스탭은 리더와 자신의 생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올바른 서포트를 할 수 있어야 자기 몫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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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을 4년이나 해놓고도, 배운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늘도, 내가 퇴직하던 시점의 나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보면서, 내가 그 순간에 어떻게 정리를 하는 것이 좋았을까... 다시 돌아보게 됐다. 분명 얻은 것이 있고, 배운 바가 있을텐데 짧은 시간에 입말로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한지라, 긴 호흡을 가지고 하루 이틀 글로 정리하다보면 좋을 것 같다. 또 이런 내용들을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선배들에게 읽혀주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도 나온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닐런지????? (물음표를 많이 넣자)


퇴직 무렵, 그룹장님을 비롯한 윗분들이 조직에 도움될 고언을 하고 가라고 그리도 채근하였지만, 사실 그 무렵에는 그런 생각을 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또, 나도 충분히 적응을 할만큼 하고 일어나다보니 더 이상 무언가 '이상하다' 라고 생각할만큼 그 환경이 낯설지가 않았던 것도 문제였다. 고언을 할래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4,5 개월이 지나고, 새로운 환경에 몸담았으니 그룹장님 말씀마따나 '부채의식'도 가져보고, 과거를 정리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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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능

생각 2012. 5. 17. 14:23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주요 기능 중의 하나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성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살면서 접하는 감성이 어디 희노애락 이 네가지 뿐이던가. 그 사이사이에 또는 그 밖에 넘쳐나는 무한의 스펙트럼 속에 존재할 수 많은 감성들. 그 중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떠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예술의 기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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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생각 2012. 1. 13. 09:02

스타트업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초반이라 이것 저것 세팅할 일도 많고, 일 자체를 잘 모르다보니 아직 몸에 익지 않은 탓에 좀 무리하는 것도 있다. 그래도 출퇴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서 심적으론 여유가 있는데.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있는지 어제부턴 속이 탈이나서 또 고생.

새로이 스타트업을 시작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포스팅을 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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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얼마 안 돼서,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던 무렵이었다. 집들이라고 해봐야, 집구경하고 밥먹고 하면 별 컨텐츠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웨딩촬영이라던지, 신혼여행 사진을 구경하는게 관례(?) 비슷했는데. 그날도, 혼수품으로 마련한 42인치 테레비전에 정성스레 조립한 PC를 물려놓고 신혼여행에서 찍어온 5백여장의 사진들을 손님들 보시라고 친절한 해설과 더불어 픽픽픽픽 눌러 넘기고 있었다.

한참을 넘겼을까... 머릿속에 순간 '아차' 싶었다. 옛날처럼 사진앨범에 몇 십장 들어가는 게 아니고, 무려 수백장 또는 수천장의 사진들을 소비하는데에는 과거에 없던 '소비시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손님들 중에는 하품을 애써 참으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다.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신혼도 잠깐,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이제는 스틸사진도 있지만, 순간순간 영상을 담겠다고 이런 저런 비디오를 많이 찍었다. 첨엔 별 생각이 없다가, 어느날 보니 찍어놓은 동영상만 몇기가(압축을 했을때 얘기). 시간으로 환산해도 도저히 이걸 다 볼 시간이 없다. 다 찍어놨다가, 나중에 나이먹고 실버타운 싸가지고 가서 돌려보는 걸까? 파일 탐색기가 됐던, 스마트폰 갤러리가 됐던 간에 동영상은 용량 큰 썸네일로서 자신의 존재를 묵직하니 드러낼 뿐. 내가 그 버튼을 눌러주기 전까지는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대로 있을 듯 하다.

Lytro 라던지, pelican 이라는 이름을 들어봤거나, 혹 그 두 회사가 사실상 비슷한 기술을 가진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알아챌 수도 있을 것이다.



Light Field Camera 라고 소개되는 이 기술은 사진을 한 번 찍고 나서, 나중에 언제라도 원하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춰 사진의 깊이감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다. '애써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 라는 점에서는 혁신적일 지 모르겠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중에 여유있고 시간 될 때 초점을 맞춰서 봐야한다'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는 사진을 촬영하고 감상하는데 걸리는 시간에서 별도의 이득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진을 세심하게 고민해서 찍던지, 아니면 별 생각없이 찍고 초점을 맞추던지 간에 절대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사실 같은 것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 순간적으로 중요한 장면을 포착해야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기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나는 보도 사진을 좀더 얕은 DOF 로 굳.이. 찍어보고 싶은 어떤 기자들에게 이런 기술이 쓸모있을까...를 잠시간 고민해본다. 

앞으로 돌아가서,
내가 신혼여행에서 찍은 500장의 사진을 Lytro 로 촬영했다면. 그리고 그걸 방금 오신 손님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면. 아마도 그 중간에는 500매의 사진을
1) 적정 포커스가 맞았는지 고민
2) 안 맞았다고 판단될 경우 포커스 수정

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나라면, 니콘의 셔터를 반쯤 눌렀을 때 "띠릭!" 하는 경쾌한 포커스음을 듣는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두겠다. 특히, 2)번보다 1)번이 더 괴롭다. 더 많은 자유가! 그 자유가 오히려 번뇌를 불러올테니까. 그리고 1)번이 괴롭다고 느껴지면 당연히 2)번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며, 사진 보정으로서의 Light Field Camera 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혹, 이런 보정의 관점이 아니라 사진의 깊이감을 조정하는 것 자체에서 쾌감을 누리고자 하는 Entertainment 의 성격이라면 이 것은 또 다른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절대적인 시간을 잡아먹는 interaction 이고, 이것은 '사진감상'과는 또 다른 카테고리의 행위가 된다. 마치 내가 동영상 버튼을 못 누르고 여전히 썸네일로만 방치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 여기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이런 맥락 때문에, 나는 이것이 대단한 기술임에는 틀림없으나,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거나 기존의 카메라 시장을 잠식할만한 거대한 무엇이 되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아마도 Lytro 를 개발한 사람들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만든 첫번째 카메라가 언뜻 보면 장난감같이 생긴 것도, 사실은 그들의 치열한 고민이 빚어낸 정직한 고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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