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보자 | 1 ARTICLE FOUND

  1. 2012.12.13 노는 것

노는 것

생각 2012. 12. 13. 00:52

가끔은 노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고민해볼 때가 있다. 뽀로로가 말하는 ‘노는게 제일 좋아’ 라는 고백. 나라고 뭐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날 인물은 못 되지만, 나는 나 스스로, 혹은 남들과 잘 놀고 있는지?

요즘은 놀아줘야 하는 대상이 많다. 아내와도 놀아야 하고, 딸과도 놀아야 하고, 직원들과도 놀아야 한다. 친구들과 놀아주는 것은 가정이 생긴 후로는 좀 쉽지가 않은데, 아마 내 친구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 신경을 안 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 다양한 대상과 놀아줄 때, 나 역시 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렇다’ 가 답이면, 같이 놀았던 것이고, ‘아니다’가 답이면, 놀아주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딸아이와 노는 것은 사실 내 수준에서는 ‘놀아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빠는 왕자님해, 나는 공주님이야” “우리 결혼식 놀이하자” 라며 좁은 방 이끝에서 저끝으로 달리는 웨딩마치의 반복을 내가 즐기는 ‘놀이’로 승화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아내와의 놀이는 같이 수다를 떨면서 차를 마시고 드라마를 보거나 쇼핑을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그래도 어느정도 나와 죽이 맞는 편이니 이런 것은 나도 ‘놀았다’ 고 볼 수 있다. 친구들과 가끔 만나서 차마시고 밥먹고 노래방가고 하는 종류의 놀이 역시 유효한 편이기는 한데, 정확하게 ‘어떤 친구냐’가 또 놀이의 퀄리티를 좌우한다. 여기까지는 어찌됐든 놀아줄 수가 있다.

문제는 더 놀아주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다. 문화적 차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놀이’가 나에게 ‘놀이아님’ 정도가 아니라 ‘일탈’ 이라거나 ‘배신’ 이라는 키워드로 대치될 때다. 이때는 미안하지만 그들의 놀이를 같이해줄 방법이 없다. 나 혼자 지루하고 재미없는 거면 상관 없지만, 이 놀이의 영향이 나 하나를 벗어나 누군가에게로 뻗어나갈 것을 알때, 이 ‘놀이’는 중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논다’ 라는 것의 의미. 그 끈끈한 유대감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또 다른 구석에서 몰려온다. 이래저래 난처하다.

나는 혼자서 제법 잘 놀았다. 형제도 없었고, 혼자 산 시절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같이 놀아야 한다. 나이 서른에 같이 노는 것을 고민한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