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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6 Light Field Camera - 새로운 기술에 대한 환상 1

결혼한지 얼마 안 돼서,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던 무렵이었다. 집들이라고 해봐야, 집구경하고 밥먹고 하면 별 컨텐츠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웨딩촬영이라던지, 신혼여행 사진을 구경하는게 관례(?) 비슷했는데. 그날도, 혼수품으로 마련한 42인치 테레비전에 정성스레 조립한 PC를 물려놓고 신혼여행에서 찍어온 5백여장의 사진들을 손님들 보시라고 친절한 해설과 더불어 픽픽픽픽 눌러 넘기고 있었다.

한참을 넘겼을까... 머릿속에 순간 '아차' 싶었다. 옛날처럼 사진앨범에 몇 십장 들어가는 게 아니고, 무려 수백장 또는 수천장의 사진들을 소비하는데에는 과거에 없던 '소비시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손님들 중에는 하품을 애써 참으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다.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신혼도 잠깐,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이제는 스틸사진도 있지만, 순간순간 영상을 담겠다고 이런 저런 비디오를 많이 찍었다. 첨엔 별 생각이 없다가, 어느날 보니 찍어놓은 동영상만 몇기가(압축을 했을때 얘기). 시간으로 환산해도 도저히 이걸 다 볼 시간이 없다. 다 찍어놨다가, 나중에 나이먹고 실버타운 싸가지고 가서 돌려보는 걸까? 파일 탐색기가 됐던, 스마트폰 갤러리가 됐던 간에 동영상은 용량 큰 썸네일로서 자신의 존재를 묵직하니 드러낼 뿐. 내가 그 버튼을 눌러주기 전까지는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대로 있을 듯 하다.

Lytro 라던지, pelican 이라는 이름을 들어봤거나, 혹 그 두 회사가 사실상 비슷한 기술을 가진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알아챌 수도 있을 것이다.



Light Field Camera 라고 소개되는 이 기술은 사진을 한 번 찍고 나서, 나중에 언제라도 원하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춰 사진의 깊이감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다. '애써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 라는 점에서는 혁신적일 지 모르겠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중에 여유있고 시간 될 때 초점을 맞춰서 봐야한다'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는 사진을 촬영하고 감상하는데 걸리는 시간에서 별도의 이득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진을 세심하게 고민해서 찍던지, 아니면 별 생각없이 찍고 초점을 맞추던지 간에 절대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사실 같은 것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 순간적으로 중요한 장면을 포착해야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기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나는 보도 사진을 좀더 얕은 DOF 로 굳.이. 찍어보고 싶은 어떤 기자들에게 이런 기술이 쓸모있을까...를 잠시간 고민해본다. 

앞으로 돌아가서,
내가 신혼여행에서 찍은 500장의 사진을 Lytro 로 촬영했다면. 그리고 그걸 방금 오신 손님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면. 아마도 그 중간에는 500매의 사진을
1) 적정 포커스가 맞았는지 고민
2) 안 맞았다고 판단될 경우 포커스 수정

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나라면, 니콘의 셔터를 반쯤 눌렀을 때 "띠릭!" 하는 경쾌한 포커스음을 듣는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두겠다. 특히, 2)번보다 1)번이 더 괴롭다. 더 많은 자유가! 그 자유가 오히려 번뇌를 불러올테니까. 그리고 1)번이 괴롭다고 느껴지면 당연히 2)번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며, 사진 보정으로서의 Light Field Camera 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혹, 이런 보정의 관점이 아니라 사진의 깊이감을 조정하는 것 자체에서 쾌감을 누리고자 하는 Entertainment 의 성격이라면 이 것은 또 다른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절대적인 시간을 잡아먹는 interaction 이고, 이것은 '사진감상'과는 또 다른 카테고리의 행위가 된다. 마치 내가 동영상 버튼을 못 누르고 여전히 썸네일로만 방치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이 여기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이런 맥락 때문에, 나는 이것이 대단한 기술임에는 틀림없으나,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거나 기존의 카메라 시장을 잠식할만한 거대한 무엇이 되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아마도 Lytro 를 개발한 사람들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만든 첫번째 카메라가 언뜻 보면 장난감같이 생긴 것도, 사실은 그들의 치열한 고민이 빚어낸 정직한 고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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