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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6 wednesday

wednesday

카테고리 없음 2013. 11. 6. 00:03

남들에게는 대단치 않은 것이 내게는 무척 특별하고 의미있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 낡은 수건이라던가,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다이어리 뭐 그런 것들. 결국 그런 물건들이 지니는 가치는, 그 물건을 통해서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wednesday가 나에게는 그렇다.

 

1995년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가요계에 등장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DJ doc의 곡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wednesday라는 남성 5인조 그룹이 그 주인이었다. 종종 그시절에는 라디오에서도 틀어주곤 했고, 실제로 공중파 가요프로그램에도 등장해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우연찮게 나는 라디오에서 맨 처음 이 곡을 접했고, 가사랑 분위기가 신기해서 사서 듣겠단 결심을 했다. 그 당시 노래 테잎 하나 사려면, 우리 동네가 아닌 큰집 근처의 레코드샵까지 가야했는데, 일년에 몇번 명절에나 가는 거라, 추석이 돼서 겨우 샀던 기억이 난다.

오버도 아니고, 언더도 아닌 이 애매한 느낌의 남성 5인조가 하필 왜 나를 지목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중학교 저년차의 그 고상한 감성을 이들의 곡으로 충만하게 채워나갔다. 덕분에 그 당시 나의 개그코드는 '머피의 법칙' 과 '연애편지 쓰는 새벽' '추억의 노래방' 정도가 그 기초를 담당했고, 나의 늦은밤 감성코드는 '내 친구는 어디에', '우리', '캔디와 테리처럼' 같은 곡들이 절절하게 달래주곤 했다. 중2병의 초입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당시 내가 듣던 음악들은 굉장히 메이저한 가요들이었는데, 신승훈, 김건모, 이승환 같은 부류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서 있었던 wednesday. 당시 우리집에 노래 테입 다 합쳐봐야 열댓개 될까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마이너도 이런 마이너가 없었다. 왜 하필 그대들이었나. 이런 운명같으니라고.

 

별이 빛나는 밤에를 이문세가 하던 시절. 하이텔로 접속해서 사연 남기면 열에 한 두번은 사연이 읽히기도 했고, 밤마다 라디오나 테입 틀어놓고 자다가 안 끄고 잠들어서 새벽 내내 켜놓기도 했었고. 저런 노래 가사에 심취해서 되도 않은 편지들도 끄적 끄적 써내려갔던 게 그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묻어 있는게 이들의 노래다. 나에게는 응답하라 1995, 1996, 1997 등등이 여기에 있는 셈.

 

하지만 이사하고, 학교가고, 졸업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wednesday 테입은 고사하고, 신승훈, 김건모 cd도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들의 노래가 등록되어 있길래,  언제고 들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2013년. 문득 스쳐지나간 이들의 노래가 생각나서 이곳 저곳 뒤져보는데, 아뿔싸. 스트리밍이고 mp3고 모두 내려가버렸다. 유투브에 겨우 한 곡 남아있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가요프로에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비디오. 주옥같은 나머지 곡들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세상에, 여기 그 노래 아는 사람 있단 말이에요!!! 그 노래를 들려주세요!!!!

 

결국 구글링을 하고 한 끝에, 겨우 겨우 중고CD장터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들의 CD(심지어 미개봉)를 구할 수 있었다.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는다고, 음원 제공되던 시절에 미리미리 받아놨더라면 좋았을 것을, 거금을 주고 CD로 구입한다고 이래저래 큰 마음 먹게 만들었다.

 

오늘에서야 도착한 택배를 풀러서, CD플레이어에 있던 아이의 동요CD를 치우고 걸어보았다. 한번 정주행을 마치고 나서는, 다시 컴퓨터에 걸어 mp3를 최고음질로 립핑하고, 거기다가 꼼꼼하게 mp3 tag 까지 입혔다. 앨범 커버도 있어야 하니까 앨범자켓을 손수 찍어서 포토샵으로 손질까지해 , mp3파일에 추가했다. 이왕 하는거 가사까지 찾아서 다 넣어줬다. 혹시 어디 날아갈까 싶어서 클라우드에 꼭꼭 박아놓기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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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세상에 이들의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나 말고 대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그야말로 세상 모두가 기억해주지 않는 그무엇을, 나는 소중히 여기고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이들의 명곡을(나에게만 명곡?), 그리고 그 명곡을 통해 추억하는 나의 어릴적 시간들을 15년이 지난 오늘, 다시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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