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놀이

생각 2014. 6. 18. 20:09
#diary

둘째 녀석은 공놀이에 아주 환장을 한다. 꼭 공이 아니어도, 둥글어서 굴러만 가는게 있으면, 아 눈이 두 배는 커진다. 아직 말을 잘 못해서 '꼬옹~!' 이란 말을 힘주어 내뱉기도 하고, 애 엄마가 처음에 ball 이라고 가르쳐놓은 것이 있어서 여차하면 '뽀올~!' 하는 말도 한다. (더군다나 그런 동그란 것이 하나도 아닌 네 개나 달려있는 자동차는 두말할 것도 없다.)

아무튼, 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이 조그마한 녀석 때문에 우리집이 온통 공 천지다. 아직 축구공이나 농구공 같은 것을 다루기엔 너무 어리다보니, 장난감 공으로 줄 수 있는 것들이 탱탱볼이나, 말랑말랑한 헝겊공, 혹은 구멍이 숭숭 뚤려서 외곽으로만 뻐대가 있는 공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던져도 혹은 맞아도 그리 아프거나 다치기가 어렵다. 덕분에 집안에서 아들녀석과 놀아주는데 이런 공놀이만큼 좋은 게 없다.

이렇게 공에 집착하는 아들녀석과 달리, 사실 나는 공이라는 물건에 대한 별다른 추억이 없다. '공'을 돈주고 사본 것은 아마 초등학교때 방영했던 '피구왕 통키' 라는 만화 덕에 하나 들여놓은 형광색 피구공이 전부였던 거 같고, 농구나 축구에는 전혀 조예가 없었으므로 그런 것들 역시 돈주고 집에 들여놓은 역사가 없다. 사지 않았던 것은 돈이 궁해서라기보단, 내가 흥미가 없었기 때문인데, 하여간 둥근 것과 몸이 직접 닿는 거의 모든 종류의 스포츠에 나는 참 약했다. 농구도, 축구도 그 나이 또래 애들이라면 누구나 열광했을 법한 스포츠였는데, 나의 유년기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이런 '공'과의 애틋한 추억이랄 게 딱히 없는 것이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공놀이에 제법 취미가 붙었다.
여전히 축구공이나 농구공은 없지만, 아들녀석이랑 놀면서 맛들인 자그마한 탱탱볼의 묘미에 빠져서 온갖 현란한 발동작으로 공을 갖고 노는 것이다. 공이 약하고 말랑 말랑하다보니, 나처럼 공을 잘 못다루는 사람도 앤간한 발동작으로 이런저런 '볼컨트롤'이 가능하다. 공중에 서너번은 제기차듯 차올릴 수 있고, 당구에서 빨아치듯이 되돌아오게 볼을 굴려보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높이로 과녁을 맞추듯이 발로 탁탁 차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애는 되려 공놀이를 못하고 있는데, 내가 더 열심인 날도 많다. 삼십년을 외면했던 공과 다시 마주하니 반가워서 이러나?

불현듯 스쳐가는 공과의 미약한 추억이 하나 있긴 하다. 중학교 시절, 점심시간마다 나가서 남들 다하는 축구를 놔두고 나와 단짝 둘이서 '족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네트가 있기를 하나, 뭐 족구장이 있을리 만무하고. 그저 운동장에 금 하나 그어 놓으면 시작할 수 있어서 편리한 맛에 나와 단짝 둘이서만 주고 받고 하며 점심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툭 툭 신선놀음하듯 차고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어디 멀리까지 분주하게 다닐 필요가 없어서 내 성격에는 잘 맞았던 거 같다. 내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름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축구좀 하는 친구들이 가끔 와서 같이 차면, 족구를 몇달 찬 나보다도 훨씬 현란한 공놀림으로 나를 풀이 죽게 만들곤 했다. 이러니, 미약한 추억도 그저 쓸쓸하게 기억될 뿐이리라.

그 쓸쓸함에 대한 보상심리일까. 오늘도 아들과 좁아터진 집안에서 차고노는 이 앙증맞은 탱탱볼. 아무도 뭐라 하는 이 없고, 내가 그저 즐거워서 차고 노는 이 둥근 물건 덕에 나는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선물받았다. 모르지. 나도 이 참에 공놀이에 재미좀 붙여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나갈 나이쯤 되면, 피파 위원 하셨다는 어느분처럼 동네 아저씨들이랑 조기축구 하고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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